삼풍백화점 붕괴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부실시공으로 갑자기 무너져 직원과 고객 1,000여 명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설계 당시 대형 상가로 설계됐으나 정밀 구조진단 없이 백화점으로 변경돼 1989년 완공됐다. 이후 무리한 확장 공사가 빈번하게 이뤄졌다. 붕괴 조짐이 있었지만 백화점은 응급처치로 대응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설계와 시공, 유지관리가 부실해 예견된 참사였다. 1년 전(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와 함께 압축성장의 그림자였다. 지상 5층, 지하 4층, 옥상 부대시설로 구성된 삼풍백화점은 붕괴 수개월 전부터 붕괴 조짐을 보여 왔다. 1995년 6월 29일 아침 5층에 심각한 붕괴 징후가 나타났다. 경영진은 영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이때 ..
청산리 대첩 이란? 1920년 10월 김좌진, 나중소, 이범석 등이 이끄는 북로군정서 군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은 청산리 일대에서 10차례의 전투 끝에 간도에 주둔한 일본군을 격파했다. 청산리 대첩 역사적 배경 국권 상실을 전후해 간도와 연해주로 이주한 애국지사와 교민들은 독립운동 단체를 결성하고 향후 독립전쟁에 대비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독립군 기지를 세웠다. 간도 지역의 독립군 부대는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더욱 활발해졌다. 1919년 8월 서일, 김좌진, 이장녕, 김규식, 최해, 정훈, 이범석 등이 조직한 북로군정서는 북만주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북로 군정은 접경지역과 가까운 울창한 숲인 지린성 길림성 왕청현 서대 파구에 근거지를 두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사관 연성 소를 설치되었..
봉오동 전투 실화 내용 1920년 6월 4일 독립군 홍범도와 최진동 부대의 소대가 북간도의 화룡현, 월신강, 삼둔자로부터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종성 군 강양동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헌병 경계초소를 급습하여 격파하였다. 당시 일본군은 독립군의 적극적인 활동에 맞서 방어하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양동 전투는 대전쟁의 방아쇠가 되었다. 다급한 소식을 접하고 일본 남양 수비대는 1개 중대를 급파해 반격했다. 독립군 사령부는 삼둔자 남서쪽 봉화리에서 1개 소대를 매복했다. 그리고 일부 부대와 총격전을 벌이며 일본군을 유도했다. 일본군이 잠복해 있던 독립군 부대 앞에서 추격전을 벌이던 것은 6월 6일 오전 10시였다. 독립군은 100m 높이에서 사격을 하여 일본군 60명을 사살했다. 당시 유탄에 맞아 독립운동..